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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농구소식

[NBA 레전드 스토리] <5> '밀러 타임을 기억하라' 레지 밀러

by 곰돌원시인 2009.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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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밀러(Reginald Wayne Miller) 전 농구선수
출생
1965년 8월 24일 (미국)
신체
201cm, 88.5kg
학력
UCLA 학사
데뷔
1987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입단
경력
1987~2005 인디애나 페이서스


[글 - 이승용] blog.naver.com/sundanceguy

03-04시즌 정상에 오른 래리 브라운과 디트로이트의 '배드 보이스'는 04-05시즌에도 여유 있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는 필라델피아를 4승1패로 꺾었고, 2라운드도 4승2패로 어렵지 않게 넘어섰다. 하지만 2라운드 마지막 경기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었다.

86-79로 앞선 디트로이트는 경기 종료를 15.7초를 남기고 리차드 해밀턴이 자유투를 얻었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이때 디트로이트 천시 빌럽스는 코트 가운데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선수에게 걸어가 경의를 표했다. 타샨 프린스도 걸어갔다. 관중들은 그 선수의 이름을 경기장이 떠나갈 듯 외쳤다.

해밀턴의 자유투 첫 시도가 성공하자 교체 신호가 들어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코트 안의 선수들은 밖으로 나가는 이 선수를 위해 일렬로 서서 경의를 표했다. 관중석의 래리 버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경기장 내 그 누구도 앉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래리 브라운은 작전 타임을 불러 디트로이트 코치진과 선수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경의를 표했다. 기록 위원들도, NBA의 심사단도, 기자들도, 디트로이트 구단 직원들도, 누구도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넘버 31'이 코트 위에서 마지막으로 빛난 순간이었다.

경기이 끝나자 브라운은 한달음에 달려와 레지 밀러를 꼭 껴안았다. 이긴 것은 디트로이트인데 디트로이트 선수들도 모두 밀러에게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중계 리포터는 이긴 팀 선수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밀러만 찾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관중들은 '1년 더(One More Year)'를 연호했다.

인디애나는 ABA에서 3차례 우승했지만, NBA에 온 후로는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NBA 파이널에도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90대 농구팬들과 대화를 한다면, 6번의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불스 팬들 앞에서도 자랑스럽게 밀러 이야기를 하는 인디애나 팬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단 한 번의 우승도, 한 번의 MVP도 수상하지 못했지만, 밀러는 인디애나 팬들에게 그 누구보다 짜릿한 순간을 선사해 준 영웅이었다.

닉스 킬러(Knicks Killer)
93-94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닉스는 조던이 빠진 불스를 꺾고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닉스는 동부 파이널에서 밀러의 인디애나와 만났다.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던 닉스는 5차전을 넘기지 않고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3차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모두의 예상대로 1,2차전은 닉스의 손쉬운 승리. 하지만 인디애나로 옮겨간 3차전, 닉스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20점 차의 패배를 당했다. 전열을 가다듬고 나온 닉스는 4차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패했다. 밀러 1명에게 19번의 자유투 시도를 허용한 탓이었다. 이 경기에서 밀러의 31득점 중 17득점이 자유투였다. 인디애나는 6점 차의 승리를 거뒀다.

다시 돌아온 메디슨 스퀘어 가든. 닉스 팬들은 5차전에서 다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5차전은 안타깝게도 닉스 팬들에게 밀러의 악몽이 시작된 바로 그 날이었다. 밀러는 무려 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는 등 39점을 올려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후 밀러가 은퇴하는 그 날까지, 닉스 팬들은 수많은 악몽을 밀러와 함께 했다. 닉스는 4승3패로 시리즈를 가져갔다. 하지만 밀러라는 지긋지긋한 천적을 얻었다.

94-95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닉스는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와 다시 마주쳤다. 밀러가 있는 인디애나였다. 이번에도 닉스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1차전에서 밀러는 다시 한 번 닉스 팬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경기 종료 18.7초를 남겨두고 점수는 105-99. 누가 봐도 닉스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인디애나의 공격. 밀러는 공을 받자마자 3점슛을 던져 성공시켰다. 105-102. 남은 시간은 16.4초. 밀러는 다시 닉스의 공을 빼앗아 3점슛을 던졌다. 105-105. 남은 시간은 13.2초. 단 5.5초만에 6점 차 리드가 날아간 것.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닉스의 존 스탁스가 자유투를 모두 놓친 후, 밀러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켰다. 경기는 9.7초를 남기고 105-107로 바뀌어 있었다. 닉스 팬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닉스 팬들은 밀러만 만나면 눈물을 흘려야 했다. ESPN이 선정한 밀러의 10대 명장면에는 무려 4개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가 들어 있다. 하지만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밀러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를 그렇게나 싫어했던 영화 감독 스파이크 리는 닉스의 팬들을 대표해서 그들의 위대한 라이벌에게 경의를 표했다.

밀러 타임(Miller Time)
97-98시즌 리그 3연패를 노리는 조던의 불스는 동부 파이널에서 밀러의 인디애나를 만났다. 모두 시카고의 낙승을 점쳤다. 1,2차전은 예상대로 불스의 손쉬운 승리. 하지만 인디애나로 돌아온 3차전, 마켓 스퀘어 가든에 모인 인디애나 팬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Show Stopper' 밀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밀러는 3쿼터 5분57초가 남은 상황에서 발목을 다쳐 코트 밖으로 나갔다. 인디애나는 남은 5분57초 동안 8점을 따라붙어 77-77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4쿼터. 9분54초를 남기고 밀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4분30여초를 남기고 조던의 슛으로 불스가 2점 차까지 추격하는 그 시점까지, 밀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코트를 오가는 것만으로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페이서스의 공격에서 밀러는 3점슛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또 3점. 다시 3점슛 정도의 거리에서 터진 중거리 슛.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밀러는 1분30초 만에 8점을 넣어 순식간에 경기의 향방을 결정해 버렸다.

이어서 열린 4차전에서 두 팀은 경기 종료 2.9초를 남기고 94-93 박빙의 승부를 쳘치고 있었다. 1점 차로 뒤진 인디애나의 마지막 공격.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골대 밑에 있던 한 인디애나 선수가 빠르게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하퍼를 따돌리고 조던을 밀쳐낸 그의 손에 공이 올려졌다. 밀러였다. 밀러는 그대로 달려가며 한 바퀴를 턴하면서 슛을 던졌다. 공은 그대로 림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밀러 타임(The Miller Time)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해 NBA 플레이오프 중계의 메인 스폰서 중 하나는 밀러 맥주였다. 항상 작전타임이나 광고시간이 끝날 때 쯤이면 프로그램 스폰서가 소개되곤 했는데, 그 카피가 'Miller time could be anything you want, as long as it feels good'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4쿼터 마지막 순간을 '밀러 타임'이라고 불렀다.

페이서스(The Pacers)
사실 밀러는 통산 평균 득점이 20점이 채 못된다(18.2점). 18시즌을 인디애나에서 뛰면서, 평균 득점이 20점을 넘은 시즌은 6시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어시스트를 많이 하거나 리바운드를 많이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종료를 몇 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응원하는 팀이 2~3점 정도를 뒤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밀러를 떠올린다. 닉스의 팬들은 경기 종료를 20초를 남기고 팀이 8점을 리드하고 있어도 항상 불안했다. 밀러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단 한 번도 득점왕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NBA 역사상 14명밖에 없는 2만5000득점 명단에 밀러의 이름이 있다. 1300경기 이상 뛴 11명 중 1명이며, 2000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시킨 2명 중 1명이다(밀러 2560, 레이 알렌 2232). 한 프랜차이즈 팀에서만 뛴 것으로 따지면 존 스탁턴과 칼 말론 다음이다. 그는 무려 1389경기를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31번 유니폼만 입고 뛰었다.

농구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 쯤 해보는 생각은 응원하는 팀이 3점 차로 뒤지고 있을 때, 3점슛을 성공시키면서 반칙을 얻어 자유투까지 성공, 한 번에 4점을 얻는 플레이다. 밀러는 이 '4포인트 플레이'를 24번 성공시켰다. 물론 역사상 그보다 더 많이 성공시킨 선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비록 밀러는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하지는 못했지만,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밀러 타임'이라는 짜릿한 기억을,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경험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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