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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농구소식

[NBA 레전드 스토리] 농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매직 존슨

 글 - 이승용 blog.naver.com/sundanceguy
 

1959년 8월14일 미시건주 랜싱에서 가난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9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수입이 그다지 많지 못했던 부모님은 자식들을 모두 다 챙겨줄 수 없었다. 어린시절 'June Bug'라 불리던 이 소년은 길가 모퉁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 소년의 가장 큰 친구는 농구공이었다. 소년은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공을 들고 농구코트로 향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는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15살 때 한 시합에서 36득점-18리바운드-16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것을 본 지역신문의 기자가 멋진 별명과 함께 그를 세상에 소개시켰다. 독실한 크리스천 신자였던 어머니는 이 별명이 불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전 세계의 모든 농구 팬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더 매직(The Magic)'이라고 말이다.

"하루종일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가게까지 오른손으로 드리블을 하면서 간 다음 돌아오는 길에는 왼손으로 드리블을 하면서 돌아오곤 했죠. 그리고는 농구공과 함께 잠들곤 했습니다" -매직 존슨, USA Today와 인터뷰-

위대한 라이벌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이 되자, 모두가 그를 매직 존슨이라고 불렀다. 본인조차 본명인 어빈 존슨 주니어가 어색할 정도였다. 그는 에버렛 고등학교에게 미시건 주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미시건대학에 진학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와 달리, NBA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라이벌과의 만남은 이때 시작됐다.

매직 존슨이 미시건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 인디애나대학 3학년이었던 래리 버드는 이미 대학 최고, 아니 NCAA 역사상 최고의 슈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1979년 역사는 새로 쓰여지게 된다. 세계 최고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 초에서 2월 말로 바꾼 것은 미국 내 프로 스포츠들의 인기를 압도하는 NCAA의 농구 토너먼트가 3월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NCAA 농구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린 파이널은 바로 1978/1979시즌이었다.

당시는 ABA와 NBA의 통합으로 그리고 카림 압둘 자바와 'Dr. J' 줄리어스 어빙와 같은 선수들의 등장으로 농구가 이제 막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가던 시절이었다. NCAA 농구는 NCAA 풋볼 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78/1979 시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존슨이 이끄는 미시건대학과 버드가 이끄는 인디애나대학은 모든 이들을 농구 팬으로 바꿔놓았다. 같은 등번호(33)를 단 이들은 자기들이 향후 NBA의 전성기를 만들어낼 주인공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의 탄생을 알리는 시합에서, 매직 존슨의 미시건대학은 75-64로 승리했다.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서태웅이 고교 최고인 정우성에게 "오늘 여기서 널 쓰러뜨리고 나도 미국으로 간다"라는 말을 건내는 장면이 있다. 대학 농구 최강이었던 버드의 인디애나(78/79시즌 1번 시드가 버드의 인디애나였다)를 꺾은 존슨은 버드에 이어서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존슨은 2학년을 마친 상태였으며, 3학년이 되지 않은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버드는 1978년에 이미 드래프트되었지만 우승을 위해서 대학에서 한 시즌을 더 뛰었다. 이에 둘의 드래프트 연도는 1년 차이가 있지만, 두 명 모두 1979/1980시즌을 통해 함께 데뷔했다.

매직과 버드
매직과 버드의 첫 시즌이었던 79/80시즌. 매직은 NBA 우승을 경험했고 버드는 신인왕을 차지했다. 두 라이벌은 데뷔 첫 해부터 NBA를 휘어잡았다. 이후 12시즌 동안 각각 3번의 MVP를 수상했으며, 리그 우승을 매직의 LA 레이커스가 5번,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가 3번 경험했다. 둘은 NBA 파이널에서 총 3번 만나 매직이 2번 승리하고 버드가 1번 승리했다.

ESPN의 래리 스와츠는 칼럼을 통해서 NBA를 부도에서 구해낸 것은 매직과 버드였다고 표현했다. 보스턴과 LA, 백인과 흑인, 올곧고 깔끔한 동부의 신사와 화려한 헐리우드의 마술사. 등번호 33번과 32번, 이 두 명의 선수가 라이벌으로 존재한 덕분에 대학농구와 NBA의 화려한 시대할 열 수 있었던 것이다.

1991/1992시즌이 시작하기 전, 매직의 에이즈 감염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발표됐다. 그리고 바로 1991년 11월7일 매직은 즉각적인 은퇴를 발표했다. 그러자 마지 버드는 라이벌이 없어지자 더 이상 농구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처럼, 부상에 신음하면서 4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그리고 시즌 후에 열린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매직과 함께 드림팀을 우승으로 이끌고는 바로 은퇴를 발표했다. 결국 그들은 같은 해에 데뷔해서 같은 해, 같은 경기에서 은퇴한 것이다(한편 매직은 1992년 올스타전을 뛰었기 때문에 공식 은퇴는 91/92시즌이다).

매직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드는 자신의 은퇴식에 꼭 와야할 사람으로 그를 선택했으며, 1992년 2월16일에 있었던 매직의 은퇴식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보스턴과의 경기에 앞서 진행된 이 은퇴식에서, 매직은 은퇴식 내내 긴장되고 경직된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매직은 버드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퍼졌다.

버드가 보스턴을 대표해 매직에게 감사를 표하자 한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던 매직이 처음으로 발걸음을 떼어 버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둘은 따뜻하게 포옹했다. 에이즈는 지금도 많은 일반인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병이다. 20년전 그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던 매직은 버드에게만큼은 두려움 없이 다가갔고, 버드 역시 밝게 웃으며 매직을 안아주었다. 그들은 라이벌이었던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직 매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2개의 금메달을 가져오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은퇴식에서-

매직, 그 이상의 매직
매직은 206cm의 장신이었음에도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포지션은 가드였지만, 웬만한 파워 포워드보다 컸다. 두 자리의 평균 득점(19.5)과 평균 어시스트(11.2)를 기록한 그는 리바운드 또한 평균 7.2개를 기록했다. 그는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에서 모두 10개가 넘는 '트리플 더블'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선수이다.

또한 매직은 보고 있는 곳과 다른 방향으로 패스를 하는 'No Look Pass'를 소개한 선수이기도 하다. 마이클 조던 또한 전 세계를 매혹시켰지만,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보지도 않은채 패스를 하는 매직의 플래이는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엘리우프, 노룩패스, 총알처럼 코트와 선수들을 가로지르는 패스 등 그가 우리에게 소개한 마술같은 플래이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마술사 매직의 존재로 NBA는 한층 세련되지고 화려해졌다.

매직은 MVP를 3번 수상했으며, 5번 우승을 경험했다. 4년 사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NBA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다. 지금도 NBA 통산 어시스트에서 3위에 올라 있으며, 평균 어시스트는 역대 1위다. 12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특히 1992년은 그가 에이즈 감염을 이유로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한결 같이 그의 이름을 적어냈다. 공식 은퇴 후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도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실수를 했지만, 그는 그 실수 앞에서 당당했다. 잘못을 인정했으며 그 대가를 받아들였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그는 가슴을 펴고서 올림픽에 나갔으며, 에이즈 감염자로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를 위한 것도, 미국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에이즈 감염자를 위한 것이었다. 매직 이후 적어도 농구 팬들에게 에이즈는 여전히 심각한 질병이긴 했지만, 옆에 서있기만해도 옮는 죽음의 병은 더 이상 아니었다.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보고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 비난한 이에게, 이런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기초를 연습했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매직의 마술같은 농구가 만들어지기까지 그는 잠자는 시간에도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연습벌레였다. 그의 화려한 노룩패스는 수많은 연습과 훈련을 함께 하면서 그곳에 동료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쩌면 현대의 화려한 NBA가 그 시절 매직의 그것보다 덜 빛나는 이유는 아마도 겉의 화려함은 같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땀과 눈물이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2시가 넘으면 다시 호박으로 변해버린 신데렐라의 마법 마차처럼, 우리가 매직 존슨의 주문에 걸려 있었던 시간도 12시즌 뿐이었다.

"의사가 말하기를, 농구를 계속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보니, 난 농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매직-

----- 매직존슨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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