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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농구소식

[NBA 레전드 스토리] <1> '해군 제독' 데이빗 로빈슨

by 곰돌원시인 2009.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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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용] blog.naver.com/sundanceguy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서 1976년 이후 15번 이상의 지구 우승 타이틀을 차지한 팀은 총 4개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FL의 피츠버그 스틸러스, 그리고 NBA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다(LA 레이커스는 14번).

스퍼스는 89-90시즌 이후 19시즌 동안 11번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4번의 NBA 우승을 거두었다. 샌안토니오 왕조의 대들보가 팀 던컨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던컨이 대들보라면 주춧돌이 되어준 선수가 있다. 바로 가장 독특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는 농구선수인 데이빗 로빈슨이다.

1987년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샌안토니오 밥 배스 단장은 레지 밀러(1라운드 11번) 스코티 피펜(1라운드 5번) 케빈 존슨(1라운드 7번) 호레이스 그랜트(1라운드 10번) 등을 뒤로 하고 해군 사관학교 사상 최고의 농구선수라 불렸던 로빈슨을 지목했다. 2시즌 연속 40승을 넘지 못한 팀이 로빈슨을 지명한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 로빈슨은 해군 사관학교 졸업 후 현역 해군으로 최소 5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배스와 샌안토니오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당시 매각 협상으로 어수선했던 구단 분위기 덕분에 배스의 위험한 선택이 방해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스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것은 2년 후에 증명됐다.

제독의 등장
로빈슨은 사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정식 농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야 키가 200cm까지 자랐고, 그제서야 학교 코치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큰 키와 운동능력 덕택에 로빈슨은 빠르게 주목받는 선수가 되지만, 처음부터 로빈슨의 관심은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군 사관학교에 진학한 로빈슨의 계획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키가 213cm까지 커져버린 것. 사관학교로서도 로빈슨으로서도 모두 곤란한 상황이었다. 로빈슨은 너무 큰 키 때문에 잠수함이나 대부분의 함정에 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해군은 NBA에서 드래프트까지 받은 로빈슨에 대해 예외를 인정, 사관학교 졸업 후 5년의 의무 복무 기간을 2년으로 줄여줬다.

로빈슨은 2년의 복무 후 FA를 선언, 더 많은 돈을 받고 자신이 가고 싶은 팀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을 지명해준 샌안토니오와의 의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배스의 도박이 대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해군 중위로서 2년을 보내는 동안 로빈슨은 미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1989년 샌안토니오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로빈슨이 일반인으로서 정식 입단 계약을 맺은 것. 그들은 로빈슨을 '해군 제독'으로 불렀다. 로빈슨의 첫 시즌이었던  89-90시즌은 샌안토니오 팬들에게도 NBA 팬들에게도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제독은 말로만 제독이 아니었다. 각잡힌 '깍두기 머리'를 한 이 신인은 새로운 샌안토니오 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89-90시즌, 샌안토니오는 전 시즌보다 35승을 더 거둬 그 시점까지 NBA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성적 향상을 이루어 냈다. 이 기록은 97-98시즌 던컨이 가세한 샌안토니오(+36)와 07-08시즌 삼총사로 무장한 보스턴(+42)에 의해서 깨졌다. 하지만 96-97시즌 샌안토니오의 성적이 본래 전력과는 무관한 부상으로 인한 결과였다는 점과 07-08시즌 보스턴 성적은 가넷과 레이 앨런의 영입 효과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신인 한 명이 몰고 온 가장 큰 성적 향상은 로빈슨의 몫이다.

트윈 타워
96-97시즌 로빈슨은 등 부상에 발 부상까지 당하면서 시즌 내내 단 6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이로 인해 팀은 20승밖에 못거두는 치욕적인 시즌을 보내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즌은 왕조 건설의 또 다른 조각을 모으기 위한 과정이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는 던컨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스트라는 '트윈 타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트윈 타워의 효력은 즉각 나타났다. 던컨의 첫 시즌인 97-98시즌 샌안토니오의 경기당 평균 리바운드는 44.17개였다는데, 절반 이상인 22.5개를 트윈 타워가 책임졌다(던컨 11.9개, 로빈슨 10.6개). 트윈 타워는 득점에서도 92.5점 중 42.7점(던컨 21.1점, 로빈슨 21.6점)을 담당했다. 팀에 1명만 있어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오는 '20-10 플레이어'를 두 명이나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패기와 경험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으로 말이다.

로빈슨에서 던컨으로 이어지는 세대 교체는 NBA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통털어서도 가장 성공적인 세대 교체로 인식되고 있다.

파업 때문에 절반으로 줄어든 98-99시즌은 '리더' 로빈슨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빛난 순간이었다. 로빈슨은 수비적인 수치는 전 시즌 수준을 유지한 채 평균 슛 시도 횟수를 큰 폭으로 낮췄다(14.6→10.8). 이에 평균 득점은 6점 가량 떨어졌다(21.6→15.8). 부상으로 신음했던 96-97시즌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20-10을 실패한 시즌이며, 평균 슛 시도 횟수가 14개 이하로 떨어진 것도 96-97시즌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하지만 로빈슨이 최악의 개인기록을 낸 이 해, 샌안토니오는 첫 NBA 우승을 달성했다.

여기서 샌안토니오의 우승이 던컨 덕분이라는 오류를 범하기 쉽지만, 이 시즌 로빈슨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격적인 수치는 모두 하락했지만, 로빈슨의 수비 지표는 여전히 주요 부문에서 모두 리그 10위권 내였다(리바운드 10위, 블럭샷 8위).

무엇보다도 딘 올리버에 의해서 창안된 수비 능력 지표인 '디펜시브 레이팅'에서 90 아래인 선수는 로빈슨이 유일했다. 오히려 올해의 수비상을 수상했던 91-92시즌의 94보다도 6포인트나 떨어진 88이었다. 올해의 수비상을 4번 수상한 벤 월라스조차 가장 낮았던 수치는 87이었으며, 역시 4번 수상한 디켐베 무톰보는 한 번도 9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절반으로 줄어든 시즌 덕분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97-98시즌에서 던컨의 능력을 확인한 로빈슨이 자신의 의지로 공격보다 수비에 더 치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로빈슨은 이후 4시즌 동안 평균 75.5경기에서 30분 가량을 소화했다. 체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매년 1500점 해주던 득점은 마지막 4년 동안 평균 1,018점을 기록하면서 1,000점도 버거워졌다. 하지만 첫 9시즌 동안 단 2시즌만 95 밑으로 내려갔던 디펜시브 레이팅은 마지막 5시즌 동안은 한 번도 95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로빈슨은 던컨에게 검을 건내주고 자신은 최고의 방패가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든든하게 등 뒤를 맡아준 로빈슨과 함께 2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던 던컨은 로빈슨이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 데뷔 최초로 디펜시브 레이팅을 89로 낮추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3년 동안 던컨은 리그에서 가장 낮은 디펜시브 레이팅을 기록했다. 그리고 던컨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형 선수가 된 이 3시즌 동안 샌안토니오는 2번의 우승을 더 경험했다.
 
자신에게 검을 건네주고 방패가 되어준 로빈슨이 은퇴하자, 던컨은 주저없이 로빈슨을 대신한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던컨이 내놓은 검은 파커와 지노빌리가 물려 받았다. '해군 제독'이라는 별명 답게 로빈슨은 자신의 은퇴 뒤에도 팀을 계속 강팀으로 남게 하는 정신을 남기고 간 것이다.

No.50
영구 결번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는 자식들에게는 겸손하게 자라라는 당부를, 팬들에게는 술은 적당히 마시고 운전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로 끝내려 하자, 팬들은 한 목소리로 '팀!'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로빈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멋쩍은 표정의 던컨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마치 던컨의 영구 결번식이라도 되는냥 던컨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다음 시즌부터는 자신이 던컨과 샌안토니오의 최고의 팬이 될거라 약속했다.

로빈슨의 특별함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 따냈기 때문은 아니다. 2번의 NBA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개의 MVP와 올스타에 10차례 선정된 선수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로빈슨의 특별함은 배 위에서는 누구보다 엄한 사령관이었던 그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큰 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리더였다.

던컨이 가넷보다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던컨이 MVP를 더 많이 수상해서도, 리그 우승을 더 많이 경험해서도 아니다. 던컨에게는 가넷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최고의 '해군 제독'과 함께한 6년 간의 항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은퇴했지만 샌안토니오 호는 여전히 그가 정해 놓은 방향을 따라서 순항하고 있다.

----- 데이비드 로빈슨 기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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