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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농구소식

[NBA 레전드 스토리] <13> '비범을 넘어선 평범' 존 스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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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탁턴(John Houston Stockton) 전 농구선수
출생
1962년 3월 26일 (미국)
신체
185cm, 79kg
학력
곤자가대학교 학사
수상
2009년 2009 명예의 전당 헌액
경력
2003 선수생활 은퇴
1984~2003 유타 재즈


[글 - 이승용] blog.naver.com/sundanceguy

여기 185cm 80kg의 볼품없는 신체 조건을 가진 한 농구 선수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버슨처럼 놀라운 스피드와 운동신경을 지닌 것도 아니고, 야오밍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다. 마이클 조던 처럼 엄청난 점프 능력을 소유하지도 못했으며, 샤킬 오닐처럼 힘이 좋은 것 또한 아니다.

그는 스타 플레이어의 필수 조건이라는 드래프트 상위 지명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와 같은 해에 드래프트 되면서 아예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신인왕은 물론 루키 팀에 조차 뽑히지 못했으며, NBA 우승도 하지 못했다. 딸 둘과 아들 넷을 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그 흔한 스캔들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외모 역시 평범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는 NBA에서 무려 19시즌을 한 팀에서 뛰었다. 그것도 주전으로. 또한 올스타에 10번이나 선정되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1990년대 NBA 최고의 포인트가드를 뭍는 질문에는 페니 하더웨이의 이름도 나올 것이고, 팀 하더웨이라 대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이슨 키드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게리 페이튼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10명 중 7명의 입에서는 같은 이름이 나올 것이다. 존 스탁턴이라고.

꾸준함과 기본기의 남자
스탁턴의 최대 강점은 꾸준함이었다. 그가 19시즌을 뛰면서 단 22경기를 결장했다. 그 중 18경기는 한 시즌에 나온 것으로, 그 시즌을 뺀다면 18시즌 동안 단 4경기 만을 결장했다. 특히 98-99시즌부터 02-03시즌까지, 만 36세에서 만 40세 시즌 5년간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탁턴 시절의 유타 저런 간단한 공격 루트로 어떻게 저런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적인 공격 방식을 고수했다. 그건 바로 그 유명한 '픽앤롤'(Pick & Roll)이었다. 스탁턴과 칼 말론의 팩앤롤 플레이는 픽앤롤의 교과서 그 자체였다. 기본기로 똘똘 뭉친 스탁턴의 픽앤롤은 동물적인 운동 능력을 지닌 NBA선수들이 19년 동안 알고서도 못막은 플레이 중 하나였다.

NBA 유니폼은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약간의 힙합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특히 조던 같은 선수들이 조금 큰 트렁크 팬츠를 입기 시작하면서 딱 달라붙는 유니폼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페니나 아이버슨과 같은 패션 감각을 소유한 선수들이 나오면서 농구 유니폼은 힙합풍으로 입어야하는게 대세가 됐고, 모든 선수들 또한 그런 유니폼을 입었다. 딱 한 선수만 빼놓고 말이다.

스탁턴은 경기 내에서 가장 찾기 쉬운 선수였다. 짧은 반바지와 같은 'Short-shorts'를 입은 유일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학생이 유행에 맞춰 고친 교복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교탁 바로 앞에 있는 한 학생 만이 원래 스타일의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단추까지 다 잠그고서 말이다.

스탁턴의 촌스러운 패션이 가끔 농담거리로 사용되긴 했지만, 누구도 그런 스탁턴을 비웃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농구 자체에 집중했던 스탁턴에게는 어려서부터 늘 입어온 유니폼이 진짜 유니폼이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그는  정도 만을 걸어가는 그런 남자였다.

NBA를 정복한 백인
최고의 백인 농구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래리 버드라는 대답이 나온다. 물론 버드는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스탁턴 역시 위대한 선수였다.

NBA의 역사상 한 시즌 1000개 이상의 어시스트는 총 9번이 나왔다. 아이재아 토마스가 한 번, 케빈 포터가 한 번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7번을 스탁턴이 만들어냈다. MVP를 2번 수상한 스티브 내쉬의 최고 기록은 897개다. 버드의 라이벌이자 조던의 초기 라이벌이었던 매직 존슨의 최고 기록은 989개였다. 반면 스탁턴은 풀타임으로 뛴 16시즌 중 9시즌에서 900개 이상을 기록했다.

스탁턴의 통산 어시스트는 1만5806개다. 2위 그룹인 마크 잭슨(1만334) 매직 존슨(1만141) 제이슨 키드(9913)와는 무려 5000개 이상 차이가 난다. 버드(5695)와 존슨의 통산 어시스트를 합쳐야 스탁턴의 그것이 나오는 것이다(물론 버드는 리딩 가드가 아니었다). 스탁턴의 경기 평균 어시스트 수는 10.5개다. 지난 10시즌 동안 어시스트 1위가 10.5개 미만을 기록한 적은 모두 5번이었다. 이 정도면 압도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NBA 역사상 플레이오프 평균 어시스트가 10개를 넘는 선수도 존슨(12.35)과 스탁턴(10.10) 단 두 명 뿐이다.

아이버슨은 가로채기의 대명사다. 아이버슨이 한 시즌 가장 많은 가로채기를 기록한 것은 225개였다. 하지만 스탁턴은 네 시즌이나 225개 이상의 가로채기를 기록했다. 통산 3265개는 2위 조던(2514)을 근 차이로 앞선다. 공교롭게도 존슨(1724)과 버드(1556)의 통산 가로채기를 합치면 스탁턴과 비슷해진다.

많은 이들이 가지기 쉬운 고정 관념은 스탁턴은 득점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다. 스탁턴은 대학 시절에도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였으며, 풀타임으로 뛴 16시즌 모두 두자릿수 평균 득점을 기록했었다. 득점력 있는 가드의 대명사인 매직 존슨의 통산 득점은 1만7707점이다. 스탁턴의 통산 득점은 1만9711점으로 NBA 역대 37위의 기록이다.

변하지 않는 고목
1984년부터 2003년까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유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로고가 바뀌었으며 홈구장도 바뀌었다. 동계 올림픽도 열렸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솔트레이크시티의 농구 팬들은 농구를 보러가면 언제나 딱 달라붙는 짧은 반바지에 등번호 12번을 달고 있는 작고 마른 백인 남자를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스탁턴은 그렇게 19년이나 유타 재즈를 지켰다.

87-88시즌부터 95-96시즌까지 9시즌 동안 3명의 다른 선수들이 NBA 득점왕을 차지했다. 4명이 리바운드 1위가 있었으며, 5팀이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9시즌 동안 어시스트 1위는 한 명 뿐이었다. 조던이 6번 NBA 챔피언에 오르는 동안 파이널에서 2번 이상 마주친 팀은 단 한 팀 뿐이었다. 바로 스탁턴과 말론이 있는 유타였다.

35년의 역사를 지닌 유타는 플레이오프에 22번 진출했다. 하지만 그 중 19번을 스탁턴이 뛴 19시즌에서 만들어냈다. 유타 역사에서 스탁턴이 뛴 시즌을 제외하면 16시즌 동안 단 3차례 진출했을 뿐이다.

유타 팬들을 넘어서 전 세계의 농구 팬들이 평범의 극치인 이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비단 그가 평범으로 비범을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하고 자신의 팀과 팬을 사랑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94-95시즌 신인 제이슨 키드의 연봉은 270만달러였다. 하지만 그 해 8시즌 연속 어시스트 1위에 오른 스탁턴의 연봉은 260만달러였다. 스탁턴의 평범하지만 꾸준하며 성실한 이미지를 원하던 기업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스탁턴은 한 번도 그런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96년 다시 자유계약선수가 된 스탁턴은 망설임 없이 유타와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구단에 일임했다. 그리고 3년간 1500만달러에 계약했다. 같은 해 조던의 연봉은 3000만달러였으며, 올라주원은 960만달러를, 오닐은 1000만달러를 받았다. 스탁턴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자신의 아들이 뛰고 있는 아이스하키 팀이 델타센터에서 시합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것이 모든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유타와 재계약한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내세운 조건 이었다.

그는 돈보다 농구를 더 사랑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팀을 사랑했다. 그의 단짝 말론은 결국 우승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한 시즌을 레이커스에서 뛰었지만, 스탁턴은 수많은 유혹에도 은퇴를 선언했다. 40세였던 마지막 시즌에도 전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을 했던 점을 감안하면, 본인만 원했다면 우승에 도전하는 팀에서 백업 가드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탁턴은 한 번도 리그 MVP와 리그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지만, 한 번도 그 것을 위해서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통산 두자릿수 득점과 두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한 존 스탁턴이 트리플 더블을 한 번밖에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반대로 한 번도 트리플 더블이라는 기록을 욕심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그는 정규시즌 경기에서 한 번도 두자릿수 리바운드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1회 트리플 더블은 플레이오프에서 나왔다) 리바운드 1~2개 차이로 트리플 더블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매년 3~4경기씩 있었음에도 트리플 더블을 위한 리바운드 시도를 하지 않았다.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게 자신의 할 일만 했을 뿐이었다.

유타의 팬들은 홈구장 앞을 지나는 89번 국도의 이름을 John Stockton Dr.라고 명명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 그는 또한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인 중 한 명이며, ESPN 선정 가장 위대한 포인트가드에서는 매직 존슨, 아이재아 토마스 등에 이어 4위에 뽑혔다. 그는 또한 말론, 데이비드 로빈슨, 찰스 바클리와 더불어 올림픽 금메달을 2회 이상 따낸 선수 중 한 명이다.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굉장한 능력을 보유한 선수들은 많았다. Dr.J가 있었고, 카림 압둘 자바가 있었으며, 그 이후로도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등은 물론이고, 최근의 르브론 제임스까지 계속해서 세대를 이어서 탄생하고 있다. 오히려 나오기 힘든 것은,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기본기와 꾸준함, 변치 않는 열정으로 극복한 선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탁턴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매직 존슨처럼 마술 같은 플레이를 해서도 아니고, 마이클 조던처럼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선수여서도 아니며, 샤킬 오닐처럼 엄청난 압도감을 지니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데뷔했을 때 태어난 르브론 제임스가 NBA에 드래프트 되는 해까지 강산이 3번은 변했을 그 긴 시간 동안 늘 같은 모습으로 농구 코트를 지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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