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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일기/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막전막후(上)/(下)

by 곰돌원시인 2016.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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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일기/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막전막후(上)

■ 박정상 프로가 전하는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이면

이세돌과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바둑 대결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났다. 비록 스코어에선 사람 대표로 나선 이세돌이 졌지만 사람들은 이세돌을 패자라 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준 인간의 모습은 사람들의 심금을 자극했다. 이세돌은 졌지만 이겼다.

뜨거웠던 관심과 진했던 감동, 그리고 그 여운은 바둑이 세상에서 다하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절친 후배로 때로는 지척에서 이세돌과 함께하며, 때로는 생방송 해설자로 승부의 현장을 곁에서 지켜본 박정상 9단이 한게임바둑에 옥고를 보내 왔다. 생생함이 살아 있는 친필 원고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이세돌 9단이 대국 전 딸 혜림이의 장난기 발동에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

진정 멋있는 승부였다. 세계대회 결승 같은 수많은 명승부를 현장에서 느껴봤고, 지금껏 수만 판의 기보를 검토해 봤지만 이번처럼 가슴 뜨거워지는 바둑은 처음이었다. 웅장하고, 비장했으며, 격렬했지만 아름다웠다.

2국을 이세돌 9단이 패하던 날 그의 방에서 아침까지 복기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을 나설 때 3연승으로 역전하면 이번 승부에 대해 옆에서 지켜봤던 이로서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지만, 3국을 패함으로써 그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1승4패로 세기의 대결은 막을 내렸다.



그 후 열흘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다. 차갑고 묵직하게 이기는 길로 걸어가던 알파고의 수법들. 그리고 타오르는 심장을 누르며 때론 냉정하고 때론 처절하게 이기는 길을 찾던 승부사 이세돌의 모습.

바둑쟁이기에 글쓰기는 어색하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승부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치열했던 승부의 이면을 전하고자 한다.


▲ KBS 해설위원 박정상 9단이 KBS '장영실쇼'에 출연해 이세돌-알파고 대국을 설명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세기의 대국이 시작되기 이틀 전 이세돌 9단을 한국기원 국가대표실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이번 대결에 자신감을 비쳤고, 오히려 몇 일 전 커제에게 패했던 농심배 최종전이 화제가 되어 그 대국을 동료기사들과 검토했다.

다들 그랬다. 오히려 지는 것이 더 힘들다고. 우리에게 알려진 유럽챔피언 판후이와의 5판의 대국 기보가 알파고에 대한 전부였고, 인공지능에 대한 무지함에서 오는 방심은 바둑계 전체로 퍼져 있었다.

나는 이세돌 9단에게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대결에서 체스챔피언이 심적 동요를 일으켜 패배로 이어진 이야기를 했다. 말할 당시 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한다는 심정이었다. 나 역시 5대 0 승리를 예상했던 사람이기에….

​​"역사적인 첫 대국… 알파고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3월 9일 인공지능과 세계챔피언이 역사적인 첫 대국을 시작했다. KBS중계 해설을 맡은 나는 이세돌 9단의 7번째 수를 보고선 피식했다. 알파고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시험해 보는 수였다. 알파고는 담담하게 정공법으로 대응했다.

처음으로 이상기류가 흐른 것은 알파고의 24ㆍ26의 수법이었다. 그 수순은 내가 생각했던 그 어떤 일감보다 정확한 수법이었다. 이세돌 9단이 정면대응했지만 초반 싸움은 알파고가 유리하게 흘러갔다.


<제1국>이세돌이 흑1로 붙였을 때 알파고의 백2ㆍ4(실전 24ㆍ26)가 초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끈 정확한 수법이라는 평을 들었다.

복잡한 전투가 끝없이 펼쳐졌다. 알파고는 냉정하게 판세를 이끌어갔지만 이세돌 9단 역시 흔들림은 없었다. 드디어 인공지능의 실수가 나왔다. 상대가 실수했을 때 그것을 찔러 들어가는 이세돌 9단의 수법은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다를 바가 없다.

국면은 누가 봐도 역전 분위기였다. 그 순간 놓인 알파고의 102번째 침입수. 그 수를 본 이세돌 9단은 심각한 얼굴로 장고에 빠졌고, 중계를 하던 나도 이리저리 대응수를 찾아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국은 이세돌 9단의 패배로 끝이 났다.


<제1국>백1(실전 102)이 모두를 놀라게 한 회심의 침입. 현장에선 "알파고가 이런 수도 둘 줄 알아"라며 웅성거림이 일었다.

3월 10일의 2국은 5번의 승부를 되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승부처였다. 중계가 없었던 나는 대국 현장을 찾았고, 시합 시작 20분 전 대기실에서 이세돌 9단과 만났다. 방 안에는 우리 둘 외에 홍민표 9단과 이하진 국제바둑연맹 사무국장, 그리고 형수님과 혜림이까지 6명이 있었다.

혜림이는 아빠 머리를 올백으로 올리며 장난을 쳤고, 우리들도 바둑 이야기는 쏙 집어넣은 채 일상적인 대화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합 시작 5분 전 우리는 대국장으로 갔고,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아빠 이세돌이 아닌 날카로운 눈빛의 승부사 이세돌이 앉아있었다.

​​"알파고의 수에 프로들은 또다시 경악했다"

이세돌 9단의 수법은 단단했다. 현란한 수법을 구사하는 알파고를 상대로 그 어떤 빈틈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초반 전개가 괜찮다고 느끼던 순간 알파고의 37번째 수가 아자황 박사에 의해 바둑판에 놓여졌다.


<제2국>5선에서 어깨를 짚어간 흑1(실전 37)은 기존 상식에 없던 수로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렸다.

프로들은 경악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내가 공부했던 바둑에 저 수는 없었다. 90년대 초 세계대회를 수차례 석권했던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중반 이후였고, 초반에 5선으로 저렇게 두는 것은 처음 시도되는 수였다. 검토실의 다른 프로들과 검토를 해서 저 수는 좋고 나쁨이 불분명하고 한참 후의 진행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알파고의 수법은 인공지능이지만 충분히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매 순간 이길 확률을 계산하는 알파고는 흑번일 때 48%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흑으로 둘 때의 수법이 백보다 도전적이다.

흑41ㆍ43이 그랬다. 분명 무리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세돌 9단의 대처가 좋지 않았고, 유리한 국면의 알파고는 철옹성같이 그것을 끝까지 지켜냈다.


<제2국>알파고는 흑번일 때 최초의 승리 확률을 낮게 잡아 도전적으로 둔다고 한다. 흑1ㆍ3(실전 41ㆍ43)이 그 일례. 분명 무리수였는데 이세돌의 대처가 좋지 않았다.

방송 관계로 중반 이후 현장을 벗어났던 나는 여의도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 머리가 멍했다. 1국을 졌을 때도 낙관적이었던 나의 전망은 무지함의 산물이었고, 경솔한 오판이었다. 바둑계는 침울했고, 더 나아가 이세돌 9단을 응원하던 온 국민이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형수님이 찾았다, 도와 달라고"

형수님께 연락이 왔다. 그 누구보다 많이 큰 승부를 옆에서 지켜봤을 형수님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인지라 이럴 때 프로들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물어오셨다. 나 역시 큰 승부 경험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생소한지라 조금 난감했다. "저도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평상시에 세돌이 형이라면 지난 바둑의 검토를 원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두 시간 후 방송을 앞두고 '세돌이 형은 좀 괜찮나요?'라고 문자를 보냈고, 동료기사들과 복기를 하고 있는데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답장을 주셨다. 후에 알게 됐지만 형수님이 백방으로 도움 줄 프로기사가 없는지 알아보셨나보다. 세계대회(백령배 통합예선) 관계로 당일 오전 중국으로 100명의 프로기사가 떠났음에도….


▲ 이세돌 가족의 단란한 모습. 동갑내기 김현진 씨와 2006년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방송을 마치고 호텔방을 찾아갔다. 스위트룸은 방 두 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 쪽에선 아내와 형수님, 혜림이가 있었고 반대편 방으로 들어가니 홍민표 9단, 한해원 3단, 이다혜 4단이 이세돌 9단과 복기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은 휴식일이기에 맥주 한 캔씩 들고 몇 시간씩 1ㆍ2국에 대해 검토를 했다. 이세돌 9단은 1국의 102수를 대비할 시간이 많았음에도 경시했던 것과 2국에서 알파고의 무리수를 응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논란이 됐던 2국의 37수에 대해서만 한 시간 이상을 검토했는데, 역시 훌륭한 수라고 결론지었다.

​​"뭐야, 이 수가 있었잖아!"

바둑판만 바라보진 않았다. 형수님과 아내도 합류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예전에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어렸을 때의 추억과 세계대회에 같이 참가했을 때 재밌었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의외로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 이세돌 9단은 내 주위의 그 누구보다 드라마에 조예(?)가 깊다. 이세돌 9단의 누나 이세나 월간바둑 편집장은 '동생이 무협지를 많이 봐서 말을 멋있게 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드라마 명대사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새벽 4시쯤이었을까? 그땐 이세돌 9단과 홍민표 9단,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 방에 있었는데 갑자기 이세돌 9단이 "뭐야! 이 수가 있었잖아" 하며 2국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했고, 2시간을 더 검토했다.

초반에 빈틈없이 모양을 구축하고, 알파고가 조금 무리하게 나오면 안일한 대처가 아닌(2국서 이세돌 9단은 이 정도면 약간 우세란 판단으로 제한시간을 아끼기 위해 빠른 선택을 했다)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더 강하게 두어 찬스를 포착하는 것. 그리고 불리해지면 패를 이용해 승부수를 던질 것. 이것이 우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침 6시. 호텔을 나서는 기분은 상쾌했다. 이세돌 9단은 2연패를 당했지만 전혀 좌절하지 않았고, 현재 상황에서의 최선을 찾고 있었다.

3월 11일. 이 날은 휴식일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부재중통화가 수십 통이다. 뭐지? 하는 심정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이세돌 9단이 동료기사들과 아침까지 알파고 대처법을 찾느라 고심했다는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몇몇 친한 기자분들께 전화를 드렸더니 역시나 어떤 전략을 연구한 것인지 물어오셨다. 아직 대결이 진행중이라 말하긴 곤란하다고 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고,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다시 하루가 흘러 운명의 3국을 맞이했다. 알파고를 상대로는 흑번이 더 힘들다고 이야기했던 이세돌 9단의 흑번. 배수의 진을 친 이세돌 9단의 첫 수가 반상에 놓여졌다. [기보는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삽입한 것이며,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박정상 일기/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막전막후(下)

■ 박정상 프로가 전하는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이면

지난주 본 사이트에 게재해 화제를 모았던 <박정상 일기 : 이세돌-알파고 대결의 막전막후>의 '하편'을 싣습니다. 이 글은 이세돌 9단의 절친 후배로 대결이 열리는 동안 때로는 지척에서 함께하며, 때로는 생방송 해설자로 승부의 현장을 지켜본 박정상 9단이 한게임바둑에 보내온 것입니다.

미처 접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던 세기의 대결을 반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도와 드리기 위해 기보는 편집자가 삽입한 것임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진정 멋있는 승부였다. 세계대회 결승 같은 수많은 명승부를 현장에서 느껴봤고, 지금껏 수만 판의 기보를 검토해 봤지만 이번처럼 가슴 뜨거워지는 바둑은 처음이었다. 웅장하고, 비장했으며, 격렬했지만 아름다웠다.

2국을 이세돌 9단이 패하던 날 그의 방에서 아침까지 복기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을 나설 때 3연승으로 역전하면 이번 승부에 대해 옆에서 지켜봤던 이로서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지만, 3국을 패함으로써 그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1승4패로 세기의 대결은 막을 내렸다.

그 후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다. 차갑고 묵직하게 이기는 길로 걸어가던 알파고의 수법들. 그리고 타오르는 심장을 누르며 때론 냉정하고 때론 처절하게 이기는 길을 찾던 승부사 이세돌의 모습.

바둑쟁이기에 글쓰기는 어색하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승부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치열했던 승부의 이면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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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해설위원이 박정상 9단이 KBS TV에 출연해 이세돌-알파고 대국을 설명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단 한 사람 외엔 패배의식에 젖어있었다"

세기의 대결 제3국이 끝난 후 중국의 1인자 커제는 '이세돌의 15번째 수가 때 이른 패착!'이라고 단언했고, 이세돌 9단 역시 초반 21번째 수로는 젖혀서 받아야 했으며, 그 이후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제3국>중국의 커제는 실전 15수째에 불과한 흑4를 패착으로 지목했다.


<제3국>한편 이세돌은 A에 젖히지 않은 흑6(실전 21)이 문제였다며, 그 이후엔 기회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세계 최정상의 기사가 초반 이후론 찬스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한 굴욕이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세돌 9단의 기질인데,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날 보여준 알파고의 수법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했으며, 사실상 승부는 112수에서 끝이 났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세돌 9단이 176수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며, 방송 중계를 하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제3국>좌상 백대마가 1(실전 112)로 산 시점에선 사실상 승부가 났다. 그 이후 흑4로 붙여간 수엔 처철함이 배어 있다.

오늘의 패배는 이번 알파고와의 대결 전체의 패배를 의미하기에…. 더 나아가 5000년 역사의 바둑이 인공지능에 패함을 의미하기에….

방송을 마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방송국 앞에서 2시간을 그냥 앉아 있었다. 남은 두 판을 이겨도 이번 시리즈의 패배가 변하지 않으며, 프로기사에게 5번승부에서 2승3패는 그냥 3패와 다름없는 거다. 나를 포함한 모든 프로기사들과 바둑계는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단 한 사람, 이세돌 9단을 제외하고 말이다. 3국을 패한 그는 담담히 4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바둑은 스포츠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나 내가 어릴 적 바둑을 배우던 시절에는 '예술'과 '도'의 개념이 있었다. 이번 알파고와의 승부는 스포츠의 관점으로 보면 3국을 패함으로써 승부는 결정났고, 100만 달러의 상금도 날아갔다.

하지만 한 판의 바둑을 예술작품으로 본다면 4국과 5국의 작품이 남아 있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가 알파고와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세돌 9단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세돌이형은 강인하니까 일어설 거예요!' 3국이 끝난 날 다리에 힘이 풀린 어느 한심한 후배가 최고의 승부사 아내와 주고 받은 문자의 마지막 문구다. 도대체 누가 누굴 걱정한 건지….

​​"바둑은 한 판 한 판이 작품이니까"

3월 13일. 3국이 끝난 다음 날 4국이 속개됐다. 흑번인 경우 48%의 이길 확률로 시작하는 알파고는 4국에서도 23번째 수에서 기상천외한 감각을 선보였다.


<제4국>흑1(실전 23)은 알파고의 기상천외한 감각이다.


알파고의 51번째 수도 좋은 판단으로, 1979년 일본 기성전 4국에서 '괴물' 후지사와 슈코 선생이 두었던 37수를 연상케 했다. 역대 국수와 명인이 모두 알파고의 안에 숨어있는 듯해서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제4국>흑5(실전 51)가 좋은 감각.

하지만 이세돌 9단의 대처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훌륭히 균형을 맞추며, 작품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알파고의 69번째 수가 등장했다. 한참 후에야 이세돌 9단에게 들었지만, 그 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본인은 지금 판세가 불리하지 않다고 봤지만, 알파고는 어떻게 형세를 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수를 보고 형세판단이 정확히 일치함을 느꼈다고 했다.


<제4국>이세돌은 흑이(실전 69)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알파고의 형세판단이 자신과 일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면은 점점 복잡해지고 중앙에서 한방승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반상에 놓인 이세돌의 78수! 구글 측이 밝혔듯이 그 많고 많은 변화에서 백이 그 자리를 두어 올 확률을 알파고는 10000분의1로 예측하고 있었고, 그 의외성이 알파고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알파고는 허둥대며 헛발질을 했고, 4국은 인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제4국>백1! '신의 한수'로 표현된 수이다. 알파고는 상대가 이 자리를 두어 올 확률을 10000분의1로 예측하고 있었고, 그 의외성에 크게 흔들렸다.

이세돌 9단은 기자회견장에서 환하게 웃었다. 2003년 당대 최강의 기사 이창호 9단을 세계대회 결승에서 넘어설 때도, 2년 전 라이벌 구리와의 10번기를 승리로 장식할 때도 보여주지 못했던 그 미소를 이번 시리즈의 승패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1승에서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솔직한 그 미소에서 승리를 갈망하던 승부사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단 한 판 남았다. 기자회견장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52%를 양보하고 흑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구글측이 흔쾌히 승낙하면서, 이틀 뒤의 5국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었다.

​​"전화가 왔다, 같이 포석 구상을 하자고"

3월 14일. 마지막 대국을 앞둔 휴식일이다. 밤 11시 뉴스 출연 이외에 별다른 일정이 없던 나는 집에서 다음 날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세돌 9단에게서 전화가 오더니 저녁에 별일 없으면 방에 와서 5국 포석 구상을 같이 하자고 했다.

중국에서 시합을 마치고 일찍 귀국한 백홍석 9단과 함께 저녁 6시 30분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 방으로 올라갔다. 형과 형수님은 이틀 전이 결혼 10주년이었는데, 자꾸 쳐들어가 가족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왠지 미안했던 우리는 10주년 기념와인과 화이트데이를 맞아 초콜릿을 선물했다.

식탁에는 꽃이 올려져 있었는데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구글측이 선물한 것이었다. 방문의 목적이 분명한지라 바로 연구에 돌입했는데 두 개의 방이 연결된 스위트룸의 한 곳에선 형수님과 혜림이가 있었고, 나머지 한 곳에서 우리들은 다음 날 사용할 포석을 구상했다.


이세돌 9단이 천진난만한 딸 혜림이의 손을 잡고 대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알파고에게 흑번 포석은 너무 갑갑해." 이세돌 9단이 연구를 시작하며 던진 첫마디였다.

우선 이틀 전 3국의 흑번 포석을 살펴봤는데, 초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앞선 두 번의 흑번 실패를 통해 내린 결론은 알파고를 상대로 흑번일 경우 공격을 서두르기보단 단단하고 치밀하게 형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맞는 포석 몇 가지를 놓고 우리들은 고민했고, 최종 선택은 1ㆍ3ㆍ5, 소목ㆍ소목ㆍ굳힘이었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인간이 애용해온 포석이고, 거기서 파생 가능한 여러 가지 형태에 대비를 했다. 저녁식사도 룸서비스로 해결하며 토론을 거듭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잊혀지지 않을 승부사의 고독을 보았다"

밤 10시 10분. 나와 백홍석 9단은 방을 나왔고 광화문역으로 걸어가며 내일 승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홍석이와 헤어지고 11시 뉴스 출연을 위해 여의도로 출발했는데, KBS에 도착하고 보니 양복을 검토하던 방에 두고 온 것이 아닌가.


뉴스는 의상실 옷을 빌려 해결했지만, 다음 날 5국 생방송에 입을 옷이기도 했기에 형수님께 연락을 드려서 잠깐 들리기로 했다.

11시 50분경 호텔에 도착 해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형수님이 맞아주시며 '혜림이 아빠 아직 안 자고 있는 것 같던데'라며 검토하던 그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 방문을 여는 순간!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바둑판을 응시하며 상념에 빠진 이세돌 9단의 모습이 있었다. 고독한 승부사의 그 모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양복을 챙기고 방문을 나설 때 배웅하던 이세돌 9단의 어깨를 툭 치며 '잘 쉬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는 무거운 어깨의 짐을 뒤로한 채 씨익 웃으며 인사를 대신했다.

3월 15일. 최종국이 열리던 날이다. 오후 1시에 대국이 시작되자 연구됐던 1ㆍ3ㆍ5의 수가 그대로 반상에 펼쳐졌다. 전날의 검토에선 알파고의 8번째 수로 반대쪽으로 치받아 오는 것이 더 신경 쓰였는데, 일단 출발이 좋았다. 15번째 수까지 우리들이 예측했던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알파고의 16번째 수는 세계무대에서 몇 차례 등장한 적 있는 수법이지만 18번째 수는 바둑 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수였다. 초반부터 서로의 기세가 충돌했고, 이세돌 9단의 단단한 실리와 알파고의 모양 대결이었다.


<제5국>사전연구한 흑1ㆍ3ㆍ5 포석. 15까지도 예상대로의 진행. 백18은 바둑 역사상 처음 시도된 수였다.

바둑이 시작되고 1시간 30분가량 흘렀을 무렵 알파고가 68번째 수를 두었을 때까지만 해도 형세는 이세돌 9단이 괜찮았다. 그리고 이 대국을 통틀어 이세돌 9단이 가장 후회를 했던 69번째 수가 놓여졌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이란 것이 있다. 바둑을 두는 열 가지 교훈으로 약 1000년 전 북송시대의 바둑 고수가 지었다고 알려진다. 위기십결의 두 번째 구결은 '입계의완(入界宜緩)'인데 '적진에 침투할 때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제5국>이세돌은 좋은 형세에서 흑1(실전 69)로 둔 수를 가장 후회했다. 너무 깊었다는 것.

이세돌 9단의 69번째 수는 그 격언을 어기는 수였고, 알파고가 크게 덮어씌우며 포위해 오자 국지전에서는 간신히 이길 수 있었지만 대세를 잃고 말았다.

​​"즐기고 있었고, 졌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불리해진 이세돌 9단은 초읽기 속에서도 107ㆍ109ㆍ169 등의 승부수를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알파고의 냉정한 마무리에 280수를 끝으로 끝내기 두 개를 남겨둔 채 항복을 선언했다. 끝까지 마무리를 지었다면 2집반 부족한 형세였다.


<제5국>승부수, 흑1ㆍ3(실전 107ㆍ109). 격렬한 저항은 알파고의 냉정한 대응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최후의 대국이 끝난 후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복기를 하고 있는 이세돌 9단의 모습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다.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는 승부하는 매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졌다고 실망하진 않았다.


총 다섯 판에 걸친 '세기의 대결'을 끝낸 이세돌 9단 주위로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 조훈현 9단을 비롯한 동료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매 순간을 즐기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사람. 내가 아는 이세돌은 그런 사람이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의 승부를 펼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알파고와 벌인 5판의 작품은 바둑의 수준을 진일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믿기지 않는 기량을 구현해 낸 구글 측에 이세돌 9단과 마찬가지로 경의를 표하며, 끝으로 바둑을 향해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바둑인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사람들은 '사람 대표'로 사람이 만든 '기계'에 맞서 투혼을 발휘한 이세돌 9단에게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다.

[출처] http://baduk.hangame.com/news.nhn?gseq=36143&m=view&page=2&searchfield=&leagueseq=0&searchtext=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70&aid=000000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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